원장님 인사말

원장님 인사말

 벌써 20년 전,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대치동에서 정신없이 강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지하철 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길을 비켜주지 않고 천천히 서서 가던 사람들의 무신경을 탓하곤 했습니다. 서둘러 걷는 내 걸음을 막는 그들의 속도를 마치 그들이 세상을 사는 속도로 여기고 그들을 추월하며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일에 시달려 게으른 자들로 인식하곤 했습니다. 한 걸음의 크기가 나보다 작은 사람들,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속도가 느린 사람들을 얇은 볼펜의 날처럼 옹졸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액자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차를 샀고 힘들게 지하철을 타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힘든 주말 수업에 지쳐 귀가를 서두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필 차가 고장이 나서 그날은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역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의 오른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 보내며 왼편에 기대어 올라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내 뒤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붙으며 추월하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나를 향해 아우성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그들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그들의 앞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부지런히 올라가는 그들에게 나는, 삶에 지쳐 게으른 놈이 되어 그들의 마음 속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동시에 액자 속에서 나보다 느린 사람들을 힐난하던 나의 손가락이, 나의 머리가 수치스러움 속에 온통 붉게 칠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액자 밖으로 한 걸음만 디디면 그만인 일이었습니다. 내가 힐난하는 자가 아닌 힐난을 받는 자의 입장에서 한번만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내게 부끄러움을 주더라도 이래야 ‘나’가 어떤 그릇된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면 그래야 합니다. 액자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엄바름의 선생님들은 모두 액자 밖에서 자신을 다그치며, 힘들어 하는 학생들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고 숙제도 잘 해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선생님들께 제 젊은 시절의 지하철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합니다. 느린 속도로 가더라도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라고.
 학생들을 다그치며 최고의 속도만을 위해 몰아세우는 것이 아닌, 그들의 걸음에 어울리는 조언을 건네기 위해, 느려도 최고가 될 수 있으며 얼마든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을 무조건 최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중과 신뢰를 쌓아가며 최선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달라고 당부합니다. 엄바름이 만드는 ‘최고’는 학생들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며 만들어 나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